퇴근하고 글을 쓴다는 것 — 월급쟁이 블로거의 이상한 야근

퇴근하면 보통 사람들은 쉰다. 씻고, 밥 먹고, 누워서 휴대폰을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TV, OTT 또는 유튜브를 틀어놓는다. 나도 그러고 산다. 사실 대부분은 그러고 산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짓을 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다시 노트북이든 데스크톱이든 켠다. 이미 회사에서 몸빵으로 체력을 다 쓰고 왔는데, 또 화면 앞에 앉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다. 당장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글을 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일단 씻는다. 씻고 나면 몸이 조금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 같지만, 사실 그때가 제일 위험하다. 그대로 누우면 끝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눕기 전에 일부러 컴퓨터를 켠다. 대단한 각오가 있어서가 아니라, 안 그러면 오늘 하루 쳇바퀴만 돌아간 날로 끝날 것 같아서다.

회사의 야근과 나의 야근은 다르다

“나의 야근”이 아니라 “나의 연장근무”가 정확한 표현이려나…

야근이라는 말은 별로 좋은 말이 아니다. 몸이 무겁고, 눈은 뻑뻑하고, 집에 가고 싶은데 못 가는 시간이다. 내가 하는 야근은 대체로 남들은 일을 끝내고 집에서 쉬거나 한잔하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야근은 추가로 남는 시간이지만, 내게 야근은 기본으로 정해진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내가 빠져도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갖은 욕을 먹을 각오는 해야 한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서 글을 쓰는 시간은 조금 다르다. 이것도 피곤하다. 눈도 아프고, 몸도 무겁고, 가끔은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싶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조금 다르다.

회사에서 하는 야근은 남의 일을 끝내는 시간이라면, 퇴근하고 쓰는 글은 내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몸은 똑같이 피곤한데, 마음의 방향이 다르다.

월급쟁이에게도 자기 이름의 공간이 필요하다

월급쟁이로 살다 보면 내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이 많다. 회사에서는 업무가 먼저 오고, 사람보다 역할이 먼저 온다. 몸빵으로 버티며 일하지만, 그 안에서 내 이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월급은 고맙다. 매달 들어오는 돈은 현실이다. 그 돈으로 밥을 먹을 수 있고, 카드값도 내고, 생활비도 쓰고, 남는 소액으로 투자라는 거창한 일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월급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이 있다. 내가 하루 종일 뭘 보고, 뭘 느끼고, 뭘 생각했는지. 그런 것들은 월급 명세서에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블로그를 쓴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그냥 내 이름으로 된 작은 공간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다.

회사에서의 나는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고, 솔직히 말하면 몸빵으로 버티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로그에서의 나는 조금 다르다. 누가 시킨 주제가 아니라 내가 걸린 이야기를 고르고, 내가 웃긴 부분에서 웃고,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을 붙잡는다. 회사에서는 내 시간이 업무 속으로 들어가지만, 블로그에서는 업무 밖으로 빠져나온 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이 있다.

AI랑 같이 쓴다고 쉬운 건 아니었다

이 블로그를 완전히 혼자 하는 건 아니다. 기획은 ChatGPT, 리서치는 Gemini, 편집은 Claude가 거든다.

처음에는 AI를 쓰면 글 쓰는 일이 훨씬 쉬워질 줄 알았다. “이제 버튼만 누르면 글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써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AI는 빠르다. 자료도 잘 찾고, 문장도 잘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종 선택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

실제로 AI 셋의 의견이 갈릴 때가 많다. ChatGPT는 글의 방향을 크게 잡고, Gemini는 새로운 소재와 팩트를 던지고, Claude는 문장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덕분에 글의 뼈대는 훨씬 빨리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셋이 다 좋은 말을 해도 결국 마지막에는 내가 골라야 한다. 나름 이름까지 지어주며 많이 친해진 AI들이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내 생활패턴과 말투를 어느 정도 짐작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경험, 문득 떠오른 생각, 내가 느낀 고된 삶을 완벽하게 대신 그려낼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내 글의 색은 내가 직접 입혀야 한다. 또 그러고 싶다.

기획실장 불러오고, 편집장 불러오고, 리서치팀장 불러오고, 마지막에는 내가 앉아서 말한다. “어, 이런 흐름 좋아. 그럼 어디 내 색을 한번 입혀볼까?” AI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 블로그 글은 사람이 쓰는 일이다.

그래도 쉬어야 한다

물론 매일 그렇게 살 수는 없다. 퇴근하고 글을 쓰는 게 좋다고 해서, 매일 몸을 갈아 넣을 수는 없다.

월급쟁이 블로거에게 제일 위험한 건 의욕이 아니라 착각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오늘 하나 더 쓰고 싶은데” — 이 생각이 쌓이면 블로그도 일이 된다. 내 공간이었던 것이 또 하나의 회사가 된다. 그건 싫다.

그래서 천천히 가려고 한다. 빠르게 성공하는 블로그보다, 오래 남아 있는 블로그가 되고 싶다.

프리버드의 시선

퇴근하고 글을 쓴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쉬어야 할 시간에 다시 앉는 일이고, 당장 큰 보상이 없어도 작은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회사에서 하는 야근은 남의 일을 끝내는 시간이다. 밤샘업무 후 아침에 퇴근하고 쓰는 글은 내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 차이 때문에 나는 다시 컴퓨터를 켠다.

이 블로그를 계속하는 이유는 아직 대단하지 않다. 당장 인생을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대신할 큰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 몸으로 버티는 사람도 자기 시선 하나쯤은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FreeBirdReview가 언젠가 커진다면, 그건 운 좋게 한 방 터진 블로그가 아니라 퇴근 후 조금씩 쌓아 올린 흔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거창한 성공담 대신, 작게라도 내 문장 하나를 남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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