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시대에 Rock 음악을 듣는다는 것 — 알고리즘은 기타 솔로를 좋아하지 않을걸?

안녕하세요, 프리버드입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약속 장소로 향하는 버스 안,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같이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묻고 무언가에 몰두해 있습니다. 10초짜리 숏폼을 보다가 조금만 지루하면 위로 슥 넘기고, 웹툰도 보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게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입니다. 매일같이 그런 풍경 속에서 저는 저대로 헤드폰을 끼고, 스트리밍 앱이 들려주는 쌈박한 곡들도 어느새 고막만 스쳐 지나갑니다.

모든 게 ‘빠른 소비’와 ‘스킵’으로 평가받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제 플레이리스트는 여전히 오래된 Rock 음악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이언 메이든, 콘, 익스트림, 주다스 프리스트, 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매노워 같은 이름들이 아직도 제 귀를 붙잡고 있습니다.
요즘 음악처럼 짧고 세련되고 즉각적인 곡들도 있는데, 저는 왜 굳이 이 효율적인 세상에서 이렇게 비효율적인 음악을 계속 듣고 있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이 글은 스포티파이를 쓰다가 시작됐습니다.

음악 앱은 이제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뭘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비슷한 곡을 추천하고, 기분에 맞는 플레이리스트까지 알아서 챙겨줍니다.
편한 기능입니다. 그러나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편해진 음악 듣기 속에서, Rock 음악은 조금 불리한 장르가 된 것 아닐까?

앨범이 사라진 자리

Rock 음악은 원래 ‘앨범’이라는 단위로 들을 때 더 맛이 나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어떤 곡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될지, 전 곡을 하나씩 들어가며 음미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트랙 순서, 곡과 곡 사이의 짧은 정적, 접속곡, 첫 곡이 문을 열고 마지막 곡이 닫아주는 흐름까지. 좋은 앨범은 그냥 노래 모음이 아니라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트리밍 시대의 음악 소비는 앨범 단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알고리즘이 좋아하는 단위는 앨범이 아니라 트랙입니다. Rock 밴드들도 정규 앨범 발매 전에 인기 있을 만한 곡을 두어 곡 선별해 싱글컷으로 먼저 올리는 전략을 취하는 듯 보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밴드들도 새 앨범이 나오기 전에 싱글컷 두어 곡을 먼저 올리고, 몇 달 뒤 정규 앨범을 올리는 식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건, 앨범 안에서 이어져야 할 접속곡조차 제대로 접속되지 못하고 따로따로 들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요즘 음악을 듣는 환경은 점점 더 빠른 소비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입니다. 스트리밍 음악도, 쇼츠도, 웹툰도 비슷합니다. 조금만 지루하면 넘길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처음 몇 초 안에 귀를 붙잡지 못하면 다음 곡.
전주가 길면 다음 곡.
기타 솔로가 길어지면 또 다음 곡.

물론 이 말은 오롯이 제 느낌일 뿐,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 역시 그런 곡들을 일부러 찾아 듣는 쪽에 가깝습니다.
다만 음악도 자연스럽게 짧아지고, 빠르게 핵심으로 들어가고, 후렴을 빨리 보여주는 쪽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K-POP이 대표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Rock이 게을러진 건 아닙니다. Rock도 현재에 맞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소비되는 판이 바뀌었음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한 장의 앨범을 샀으면 마음에 안 드는 곡도 몇 번은 들었습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구장창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듣다 보면 이상하게 처음엔 별로였던 곡이 어느 날 귀에 들어올 때가 있었습니다. 10년 후에 ‘이런 곡이?’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지루했던 인트로가 멋있게 들리고, 그냥 지나쳤던 베이스 라인이 갑자기 살아나고, 길다고 생각했던 기타 솔로가 곡의 핵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요즘은 그 순간까지 버티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입니다.

다음 곡.

LP를 지나 CD로 넘어가고, 어느 순간 MP3와 FLAC을 맞이하면서 음악은 파일로 존재하는 데이터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LP를 사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미니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던 날들.
CD를 사서 미니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던 날들.
CD 리핑을 떠서 MP3 플레이어에 넣고 다니던 날들.
이제는 그조차 필요 없이 하늘 어딘가에 떠 있는 데이터를 휴대폰으로 불러와 음악을 듣는 날들.

음악은 이제 ‘들어서 마음에 남는 것’ 이라기보다 ‘듣고 소비되는 데이터’에 가까워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쇼츠나 웹툰처럼 말입니다.

굳이 ‘Rock’을 듣는다는 지독한 비효율

요즘 음악은 참 똑똑하고 정교합니다.

프로듀서 한 명이 미디 프로그램으로 찍어내도 완성도 높은 곡이 나오는 시대입니다. 사운드는 깔끔하고, 구성은 군더더기 없고, 실패 확률도 낮습니다.

반면 Rock 음악은 시작부터 미련할 정도로 비효율적입니다.

드럼, 베이스, 기타, 보컬이라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굳이 한 공간에 모입니다. 누군가는 박자를 밀고, 누군가는 당기고, 누군가는 더 세게 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조금 더 절제하고 싶어 합니다.
박자가 틀어지면 다시 갑니다.
소리가 마음에 안 들면 또 다시 갑니다.
기계처럼 딱 맞는 비트 대신, 연주자의 손끝과 컨디션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 울림이 좋습니다.

아이언 메이든의 질주하는 리프와 베이스를 들을 때, 콘의 눅눅하고 뒤틀린 무게감을 들을 때, 익스트림의 연주력과 그루브가 튀어나올 때의 쾌감, 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랙스까지 스래시메틀 빅4의 화끈함, 매노워의 음악은 마치 칼과 방패를 들고 전장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연상시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음악에서는 잘 느끼기 어려운, 사람이 몸으로 밀어붙이는 에너지입니다.

Rock 음악에는 음악에 따라 사계를 느낍니다.

봄의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있고, 여름의 뜨거움과 강렬함이 있고, 가을의 선선함과 쓸쓸함이 있고, 겨울의 차가움과 적막함이 있습니다.

완벽하게 광낸 유리창 같은 소리가 아니라, 땀 묻은 손으로 만든 쇳덩이 같은 소리입니다. 조금 거칠고, 조금 투박하고, 때로는 과합니다. 그런데 그 과함이 어느 날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기계가 완벽하게 복제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불완전함과 폭발적인 에너지.

저는 그게 Rock 음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건, 데이터를 소비하는 시대에 Rock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일종의 쓸데없는 저항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리스너지, 데이터 소비자가 아니야. 그런 마음.

취향을 넓혀주는 척, 가두는 알고리즘

스트리밍 앱의 추천 기능은 좋은 기능이라 생각합니다.

한 곡을 듣고 있으면 비슷한 분위기의 곡을 이어서 추천해주고, 몰랐던 밴드를 발견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찾기 어려웠던 해외 밴드 음악도 이제는 검색 몇 번이면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좋은 변화입니다. 하지만 마냥 좋은 변화인가? 그러면 또 아니기도 합니다.

예전 같으면 음반 가게를 뒤지거나, 잡지를 보거나, 친구 추천에 기대야 했던 음악들을 이제는 앱이 알아서 꺼내줍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알고리즘이 계속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 들려주면, 나는 점점 익숙한 음악만 듣게 되는 건 아닐까.
요즘은 음반점에 가서 직접 구매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 잡지가 아직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만약 음악앱이 추천해주지 않으면 어디서 새 음악을 알아봐야 할지 난감할 것 같습니다.
Rock 안에서도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템포의 음악만 계속 돌다 보면, 취향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전한 울타리 안에 머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왜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까지는 모릅니다. 단지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를 계속 추천해줄 뿐입니다. 물론 내가 듣는 전 곡이 사연이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반은 좋고 반은 아니기도 하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실패가 많았습니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노래 제목을 몰라 한참 찾기도 했고, 음반 가게에서 재킷만 보고 샀다가 망한 적도 있었고, 친구가 좋다고 해서 들었는데 도저히 모르겠는 음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 속에서 취향이 넓어졌습니다.

처음엔 이상했던 음악이 나중에 좋아지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르에서 뜻밖의 재미를 발견하고, 아무 기대 없이 들었던 밴드가 오래 남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실패할 일이 줄었습니다.
추천은 늘 해주고, 검색은 쉬워졌고, 마음에 안 들면 바로 건너뛰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취향이라는 게 꼭 성공한 추천만으로 깊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상한 음악을 만나야 합니다.
처음엔 별로인 곡과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내 귀가 불편해하는 소리 앞에서 조금 버텨봐야 합니다.
Rock 음악은 그런 시간을 요구하는 장르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구매했던 것처럼 본전생각에 버티질 못합니다. 그래서 건너뛰기를 누르게 됩니다. 마치 데이터를 소비하는 것처럼…

그래서 알고리즘과 완전히 잘 맞는 음악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알고리즘은 기타 솔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길고, 너무 느리고, 너무 돌아가니까요.
하지만 사람 마음은 가끔 그렇게 돌아가야 풀릴 때가 있습니다.

이중 생활 전선에서 Rock 스피릿이 필요한 순간

밤에는 직장인으로 일하고, 오전이나 주말에는 블로거로 포스트를 붙잡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를 두 번 사는 기분이 듭니다.
몸으로 일하고, 퇴근해서 씻고, 졸린 눈을 부비며 소재를 찾거나 글을 씁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막상 해보면 체력도 마음도 같이 깎입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업무가 끝나면, 퇴근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산발한 자신을 볼 때가 많습니다.
눈은 풀려 있고, 어깨는 축 내려가 있고, 머릿속은 멍합니다. 그런데 집에 가면 또 글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쓰고 싶습니다. 힘든데도 이상하게 계속 붙잡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럴 때 스피커를 켜고 스포티파이를 실행합니다.

그리고 Rock 음악을 켭니다.

찢어지는 기타 리프와 묵직한 베이스가 들어오면, 꺼져가던 세포들이 다시 켜지는 느낌이 듭니다. 드럼이 들어오고, 보컬이 목을 긁고, 기타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이상하게 정신이 조금 돌아옵니다.

잔잔한 위로가 필요한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위로보다 폭발이 필요합니다.

“괜찮아”라는 말보다, 그냥 드럼이 “쿠치~다치~ 쿠치~다치~” 하고 들어오는 순간이 더 정확하게 마음을 때릴 때가 있습니다.
예쁜 말보다 “좡지지~ 좡지지~” 하는 기타 소리가 더 솔직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요즘 음악 시장에서는 전주가 조금만 길어도 사람들이 나가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곡들이 빠르게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진짜 명곡 중에는 긴장감 넘치는 인트로를 지나고, 묵직한 연주 구간을 버텨낸 뒤에야 후렴에서 폭발하는 곡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구조가 인생하고도 조금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도, 블로그를 키워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큰 보상이 없어도 버텨야 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계속 해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은 긴 인트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간을 지나야 다음 파트로 넘어갑니다.
알고리즘이 짜놓은 매끈하고 편안한 인생 대신, 가끔은 지루한 인트로를 꼿꼿하게 버텨내는 것.
그게 제가 이 시대에 여전히 Rock을 듣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Rock은 아직 끝난 음악이 아니다

누군가는 Rock은 예전만 못하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부터는 힙합이 Rock보다 더 큰 대중음악의 흐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습니다. 예전처럼 밴드 음악이 대중음악의 중심에 있던 시대는 아닙니다. 차트의 주인공도 바뀌었고,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중심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끝난 음악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Rock 음악이 지금 시대에 더 묘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짧아지고, 빨라지고, 매끈해지는 시대에 Rock 음악은 여전히 길게 끌고 가는 힘을 말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리를 말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스트리밍 앱 안에서 Rock 음악은 수많은 추천 목록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막상 재생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납니다.
기타 줄을 누르는 손가락, 드럼을 내려치는 팔, 목을 긁어가며 노래하는 보컬, 뒤에서 곡의 허리를 붙잡는 베이스.
그런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소리가 됩니다.
그 소리는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프리버드의 시선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은 더 편해졌습니다. 그만큼 음악을 오래 붙잡는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Rock 음악을 듣는다는 건 단순히 옛날을 그리워하는 일이 아닙니다.
조금 느리고, 조금 거칠고, 조금 비효율적이더라도 사람이 직접 부딪혀 만든 소리를 다시 듣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루한 인트로를 버텨낼 힘을 스스로에게 주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시끄럽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연주를 하고 있고.

저는 여전히 Rock 음악을 듣고 있고.

그리고 가끔은 조금 시끄럽게 살아 있어도 된다고.

“넌 무슨 음악이니? 나는 Rock이야.”

그렇게 소심한 목소리로, 살짝 우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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