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가 되려다 킬링당했다

최근 이 블로그에서는 카드 명세서를 뜯어보거나, 달러 환율을 야밤에 쫓아다니거나, AI 구독료가 아깝지 않은지 따져보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오늘은 그런 무거운 이야기 말고, 제 카드가 어느 날 홀로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 긁어버린 생활 밀착형 제품 이야기입니다. 바로 변색안경의 변덕입니다.
평소 안경은 안 쓰지만 여름 햇빛 때문에 선글라스나 변색안경을 고민 중인 분들이라면 잠깐 읽어가세요. 내 돈 주고 사서 직접 킬링당해보고 쓰는 후기입니다.
안경 하나로 퉁칠 수 있을 줄 알았다

선글라스 하나 들고 다니는 것도 귀찮은 월급러들이 여름마다 겪는 고질적인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햇빛 강한 길거리를 걸을 땐 눈이 부셔 죽겠는데, 선글라스를 따로 가지고 다니는데 실내나 지하철 들어갈 때마다 안경 케이스 꺼내서 넣었다 빼냈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변색안경이었습니다.
실내에서는 평범한 안경인데, 밖에 나가서 자외선을 받으면 알아서 색이 어두워진다니. 이 얼마나 스마트한 아이템입니까. 안경 하나로 실내용, 실외용을 다 해결한다는 문장 하나가 참 사람을 홀립니다.
“고객님~” 하고 유혹하는 모 홈쇼핑 쇼호스트들. 저는 “네~” 그러곤 지르고 말았습니다.
베라왕 ICON 티타늄 선글라스 블랙. 내돈내산으로.
그런데 이 스마트한 녀석은 제가 예상치 못한 두 가지 배신을 선사했습니다.
배신 하나 — 한여름 땡볕에 생각보다 안 어두워진다

변색안경을 쓰고 햇빛 강한 날 밖으로 나갔습니다. 자외선이 폭발하는 타이밍이니 엄청 까맣게 변해서 눈을 지켜줄 줄 알았는데, 렌즈 색이 까맣게 변하다가 중간에서 멈춘 느낌이었습니다. 눈알은 너무 잘 보이고, 선글라스라고 하기엔 어정쩡한 농도였죠.
”어~ 쇼호스트 누님들이 UV램프를 눈에 쬐며, 자외선 양이 많으면 더 짙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는 기가 막힌 함정이 있었습니다.
변색 렌즈는 자외선이 강할수록 어두워지는 원리인데, 온도가 높을수록 색이 덜 변합니다. 정작 눈이 멀 것 같은 한여름 불볕더위에는 온도가 너무 높아서 렌즈가 최고 농도까지 어두워지질 못한다는 뜻입니다. 라고 구글 선생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오히려 기온이 낮고 자외선이 강한 환경에서 더 잘 변한다고 합니다.
결국 제일 눈부신 한여름 한낮에 자외선은 99.9% 차단될지 몰라도 선글라스만큼의 눈부심 차단력은 기대한 만큼 만족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색은 변하지만 농도가 애매해서, 안 눈부신 척 눈가의 찡그림을 참으며 걸어 다닙니다.
배신 둘 — 킬러가 되려다 킬링당했다

카페에 들어가는 순간을 상상해보셨나요.
또 한 번은 햇빛 쨍쨍한 날 땀 흘리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 순간, 속으로는 살짝 기대합니다. 선글라스처럼 까맣게 변한 렌즈로 분위기 있게 등장하는 킬러 같은 그림 말이죠.
그런데 현실은 반대입니다.
렌즈가 생각만큼 어두워지지 않아서 눈알이 훤히 보이는 상태입니다. 선글라스처럼 눈을 가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투명도 아닌, 어정쩡하게 검다 만 채로 키오스크 앞에 서 있게 됩니다.
킬러처럼 색이 짙은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꿈꾸며 들어갔지만 직원분들이 어정쩡한 안경 속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데 창피함에 킬링 당했습니다.
게다가 그 어정쩡한 회색빛이 실내에 들어와도 바로 빠지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멋도 없고, 빨리 투명해지지도 않는, 완전히 어중간한 상태가 한동안 지속됩니다. 이건 변색안경 설명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설명서가 없었네요 —
그래도 편한 건 편하다
그렇다고 변색안경이 별로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선글라스를 따로 챙기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쓸 만합니다. 안경 하나만 쓰고 나가면 되고, 햇빛 강한 날 눈부심이 어느 정도 줄어드는 건 확실합니다. 산책할 때, 출퇴근길에 잠깐 햇빛을 받을 때, “아 선글라스 가져올 걸” 이 생각을 덜 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꽤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짙은 선글라스를 선호하지 않는 개인적인 취향의 사용자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완벽한 선글라스는 아니지만, 안 쓰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습니다.
포스팅 쓰는 중에 안경이 고장났다 — 뜻밖의 A/S 후기

한 달 써본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평소 안경은 안 쓰고, 선글라스도 아침 퇴근 무렵처럼 햇빛이 강할 때만 따로 챙기던 사람인데, 이 제품은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까지 있어서 출퇴근길이나 일할 때에도 한 달간 꽤 자주 착용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벗고 쓰는 정도로만 사용했는데, 안경테가 꺾이는 ㄱ자 부분의 플라스틱 소재가 “똑” 하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A/S 접수 후 택배 수거에 2일, 업체 측 검수 일정 확인에 4일. 그런데 다시 검수 기간이 필요하다며 7일 정도 더 걸리고, 계속 문자로 답변을 받았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습니다.
“아니, 삼성 휴대폰 같은 하이테크 기기도 당일 수리가 가능한데 안경 하나 검수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결국 전화를 들고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개진상 모드로 항의한 결과 11일에 안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고객 과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절차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의외로 비슷한 고장이 자주 나는 제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A/S에는 총 10일 안팎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프리버드의 결론
사실 변색안경은 배신자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혼자 너무 큰 기대를 했습니다. “안경 하나면 선글라스까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선글라스를 완전히 대신하는 물건이 아니라 일상 안경에 햇빛 대응 기능이 붙은 제품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 살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선글라스를 산다”가 아니라, “햇빛에 조금 더 똑똑하게 반응하는 안경을 산다.”
그러면 실망은 줄고 만족은 올라갑니다.
베라왕 ICON 티타늄 선글라스 블랙. 홈쇼핑 여기저기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세일 기간을 잘 활용해 보면 좀 더 싸게 사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A/S 과정은 제 기준에서는 꽤 답답했습니다.
렌즈는 햇빛에 덜 변색되고, 제 마음은 A/S에 시커멓게 변색됐습니다.

추신:
변색 렌즈의 온도 특성(고온에서 색 변화 감소)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원리이나, 구체적인 수치는 렌즈 브랜드·제품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비싼 건 다를 수 있답니다.ㅜㅜ
구매 전 해당 제품 사양을 확인해보세요.
실내 복귀 후 투명 전환 시간은 제품과 환경에 따라 다릅니다. 구매 전 제품 스펙을 확인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