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프리버드입니다.
가을전어 한 접시에 진로 한 잔.
혼자 갑니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처럼 요즘엔 이게 자연스럽습니다.
나이가 들면 친구든 지인이든 다들 가정이 있고, 각자 일정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오늘 한잔 콜?” 한마디에 바로 만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약속 한번 잡으려면 최소 며칠, 길게는 몇 주 전부터 시간을 맞춰야 겨우 자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그냥 술 한잔하고 싶은 날에는 혼자 앉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결론입니다.
그렇다고 혼자 술을 마신다고 해서 꼭 외롭습니다. 외롭고 쓸쓸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입니다. ㅠㅠ
“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날 위로해 주지?” “여러분~”
그래도 외로움이라는 건 혼자 있다고 더 커지고, 여럿이 있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각자의 몫입니다.
같이 온 사람이 없으니 대화할 사람이 없고, 혼자 떠들면 그게 미친놈이지 제 정신은 아니니, 자연스럽게 옆 테이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에 아주 잘 들어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한쪽에는 20대 젊은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친구 이야기, 지인 이야기, 직장 상사 이야기, 애인 이야기…
직장 이야기도 나왔고, 누가 어쨌네 저쨌네 하다가 또 낄낄대고 웃었습니다.
듣다 보니 제 젊을 때 술자리가 생각났습니다.
그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싫은 사람이 있으면 세상에 떠도는 온갖 욕을 질러댔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 한번 잘해보고 싶다는 시답잖은 이야기도 했습니다.
직장 이야기가 나오면 싫은 사람 욕을 실컷 하다가도 결국 마지막에는 이랬습니다.
“어~ 내일도 출근이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먼저 비슷한 일을 겪어본 친구가 자기 경험담을 늘어놓았습니다.
“나도 그런 적 있었는데.”
그 말 한마디로 시작해서 뻥 한 사발을 추가해 흥분이 고조되어 자기 이야기를 한참 해주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대단한 해결책도 아닌데, 그때는 그런 이야기만으로도 꽤 위로가 됐습니다.
물론 그때도 고민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 고민 하나가 세상에서 제일 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와 다른 게 있었습니다.
젊을 때는 내일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내일은 해가 뜨니까요.
내일은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지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욕을 하고 웃다가 집에 들어가 자고 일어나면 또 하루가 왔습니다.
다음 날도 왔고, 그다음 날도 왔습니다.
내일은 그냥 찾아오는 겁니다.
굳이 붙들 필요도 없었고, 준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60 언저리 중년 테이블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취직 이야기, 자식 이야기, 건강 이야기, 직장 이야기, 사업 이야기…
누구는 뭘 해서 돈을 벌었다더라, 누구는 뭘 하다가 망했다더라, 나는 받을 돈을 못 받았다 하는 이야기들.
그러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어디에도 써주는 곳이 없어. 오기로 이력서 계속 제출하고 있어.”
그 말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싱글이라 자식 이야기는 제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변에 사업하는 사람도 몇몇 있기는 하지만 민감해서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사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설명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건지 이야기가 거의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써주는 곳이 없다”는 말은 달랐습니다.
그건 꽤 많이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일할 곳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건 저도 이미 압니다. 알바도, 일자리도 다 까입니다.
그건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아니라, 늘 기저에 깔려 있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번 더 다짐하게 됐습니다.
난 아직 일할 곳이 있으니 바짝 벌어야겠구나.
지금 일할 곳이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합니다.
투자도 하고, 목돈도 만들어야 합니다.
나중에 일하고 싶어도 나를 써주는 곳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젊었을 때는 직장 욕을 실컷 해도 “내일 출근해야지”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지금은 직장 욕을 하면서도 그다음까지 생각합니다.
여기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일할 수 있을 때 벌어야지.
건강 이야기가 들릴 때는 또 다른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어른들 술자리에서나 나오던 이야기가 이제는 제 또래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럴 때면 문득 느낍니다.
아, 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조금 서글픕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민의 종류가 바뀌고, 예전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내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게 조금 서글픕니다.
그렇다고 불안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아직 일할 곳이 있다는 것.
아직 바짝 벌 수 있다는 것.
아직 투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좋아하는 글도 쓸 수 있다는 것.
또 아직 뭔가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혼자 앉아 있는 저는 여기저기 고성방가가 고조되는 순간, 도피처인 소주를 한 잔 들이킵니다.
20대 무리도 현실 이야기를 하고, 60 언저리 중년 테이블도 현실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내일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젊을 때는 내일이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합니다.
뭘 해도 자고 일어나면 그냥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년의 내일은 조금 다릅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 몸도 챙겨야 하고, 일도 붙들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자식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사업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다시 취직할 곳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지금과 전혀 다른 길도 찾아야 합니다.
젊을 때는 내일이 찾아왔습니다.
중년의 내일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투자도 합니다.
아직 움직일 수 있을 때.
아직 벌 수 있을 때.
아직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때.
내일을 찾으러 갑니다.
프리버드의 시선
젊음은 내일이 찾아오지만, 중년은 내일을 찾으러 간다.
그 사실이 조금 서글펐지만, 아직 내일을 찾으러 갈 수 있는 지금은 감사했습니다.
